모이 되게 오랜만이네 아키 다음으로 좋아했는데
할배들요... 이게 뭔지 설명을 해주셔야 뉴비들 유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아무래도 1만명의 수급을 베어버린건 개뻥인거 같고 한 천명정도만 죽인듯
이거 개뻥임. 일만(萬)개를 넣어서가 아니라 남만(南蠻)인의 머리(頭)를 바쳐서 만두(蠻頭)라고 했고, 오랑캐 만 이라는 뜻이 영 안좋고 쓰기 어렵다고 여긴 흘러빠진 기열 중원인들이 바꿔서 饅으로 바뀐거.
아니 왜 승상을 데몬프린스로 만드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갈량의 후손이 유비의 후손이기도 하면 둘이 게이ㅅㅅ한거야?
수어지교라는 사자성어가 괜히 생긴게 아니었구나!
....둘이 사돈을 맺었을거란 생각은 왜 안하시나요 장비가 딸이 황후인데 그러면 결과론적으로 장비랑 유비는 잔게 되는건가요...
나무위키보니깐 형제들이 공이 커서 제씨와 갈씨로 나뉘었다가 복성되었다네
그래서 지금도 제씨나 갈씨는 제갈씨로 복성되게 해준다고
전에 있던 회사 과장이 공씨였는데 대만 가면 공자 후손들이 자기를 친족으로 대우해준다 하더라.
우리집 외가쪽이 공씨인데 어머니가 공자가죽어야 나라가산다 책 읽는거 보고 기분이 좀 묘했음
실제로 그 공유도 곡부 공씨긴 함. 공자님 후손이란 소리.
촉한 후 당시 신라는 고구려 속국 수준 아니였나 ?? 왜 하필 신라로 간거지 ??
육로로 한반도 가는 길은 위나라가 틀어막고 있으니까?
일단 제갈충이 신라 미추왕?때 신라로 갔다가 그 후손이 다시 중국으로 갔다가 또 그 후손이 9세기에 신라로 재귀화 했다는 이야기도
정확히는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의 5대손 제갈충의 자손임.
한국 제갈씨의 시조는 제갈규인데
제갈량의 차남의 후손이라고도 하고 장남의 후손이라고도 하고 양자의 후손이라고도 하고 정확치 않음
기록상 확실한 사실만으로만 보면, 제갈규의 자손이라는거 뿐인데
제갈량의 형제인 근이나 균의 자손일 수도 있음.
저쪽 족보상으로 보여지길 제갈량의 자손이라고 하는게 더 있어보이긴 하니까 믿고 싶은데로 믿는거지
성도 함락후 제갈량 아들들이 핍박에서 탈출하려고 여러곳으로 도망쳤다하니, 직계일수도 있고.
어쨋든 맞긴 맞다고 중국에서도 족보 조사해서 인정한거니까...
한국 제갈씨는 예전에 중국 정부에서 족보조사 후에 제갈량 후손으로 인정해줬음
엥? 나 한 3~4년전에 대학교 때 같이 과제했던 애중에 제갈씨 있었는데?
걔가 제갈공명 후손이었어??
우리나라 제갈씨가 하나밖에 없어서 기본적으로는 제갈공명의 후손이긴함
그중에 제갈공명의 유산을 이은 사람이 나오겠네(아무말)
한 5년전쯤 남양주 장현쪽에 있었는데 저 광고에 혹해서 가봤음 먹어본바로는 맛은 괜찮았음 근데 몇년후 지나가다보니 다른가게로 바꼈더만
저 당시 만두는 인육 쓰기도 하지 않았나??;;
저 당시 수준이 아니라 심심하면 기록이 나옴. 뭐 송나라가 배경인 수호지에도 나왔으니.
무협에서 흔하게 나오는 제갈씨가 진짜 제갈량 후손이였구나...
여윽시 제갈씨 현명하구나 후대를 위해 앞날을 내다보고 한반도에 정착을 시켯네
참고로 주자(성리학 창시자)의 직계 후손도 고려 때 한반도에 정착함. 신안 주씨라고 몽골 침략때 도망 왔음. 오늘날 한국의 주씨 성 쓰는 사람 다섯 명 중 네 명이 주자 후손임.
우리나라에 방씨도 있던데...그럼 혹시 대한민국에 와룡과 봉추의 후손들이 다 존재하는거임?...ㄷㄷ
龐 씨가
개성방씨, 태원방씨가 있는데
개성방씨(송도방씨도 같음) 800명대고
태원방씨는 없어졋음.
그리고 이들이 봉추의 후손인지는 불명.
왜냐면 시조가 좀더 위인 주나라 때 사람이라....
봉추는 후손이 끊긴거로 알고있으니 그 가문이면 몰라도 봉추 후손은 아닐거임